실리콘밸리의 대표 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은 1983년 설립되어 40년간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의 든든한 파트너로 성장했습니다. 2023년 초 기준 자산 규모 2,090억 달러로 미국 16위 은행이었습니다. SVB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특화된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받은 스타트업들이 SVB에 계좌를 개설하고, 그 돈을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에 투자하는 구조였습니다.
2020-2021년 저금리와 벤처 투자 붐 속에서 SVB는 급성장했습니다. 예금은 2020년 620억 달러에서 2022년 1,890억 달러로 3배 증가했습니다. 문제는 이 예금의 대부분을 장기 채권에 투자했다는 점입니다. SVB는 금리가 오랫동안 낮게 유지될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만기가 10년 이상인 채권을 대량 매입했고, 금리 상승 리스크를 제대로 헤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2022년: 금리 급등과 미실현 손실 누적
2022년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급격히 올리자 SVB의 채권 포트폴리오는 엄청난 평가손실을 입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기존 채권의 시장가치는 하락합니다. 2022년 말 기준 SVB는 보유 채권에서 150억 달러의 미실현 손실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는 은행 자본금 160억 달러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만약 이 채권들을 매도해야 한다면 SVB는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가 될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예금 이탈도 시작되었습니다. 벤처 투자가 급감하면서 스타트업들은 운영 자금을 위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4분기 SVB의 예금은 140억 달러 감소했습니다. 은행은 예금 인출에 대응하기 위해 채권을 팔아야 했고, 그럴 때마다 손실이 실현되었습니다. SVB 경영진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대외적으로는 문제없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투자자와 예금자들의 신뢰를 잃으면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월 8일: 파산의 도화선
2023년 3월 8일 수요일, SVB는 18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며 보유 채권 210억 달러를 매각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동시에 22억 5천만 달러의 증자를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은행이 심각한 유동성 문제에 직면했다는 신호였습니다. 발표 직후 SVB 주가는 60% 폭락했습니다. 벤처캐피탈리스트들과 스타트업 창업자들 사이에 공황이 퍼졌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SVB에서 돈을 빼라는 메시지가 바이럴처럼 확산되었습니다.
유명 벤처캐피탈 피터 틸의 파운더스펀드는 portfolio 기업들에게 SVB에서 자금을 인출하라고 권고했습니다. Y콤비네이터도 같은 조언을 했습니다. 목요일 하루 동안 420억 달러의 인출 요청이 쏟아졌습니다. 이는 SVB 총 예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인출 속도였습니다. 디지털 뱅킹 시대에는 클릭 몇 번으로 수십억 달러를 이체할 수 있었습니다. 1930년대처럼 은행 앞에 줄을 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디지털 뱅크런은 몇 시간 만에 은행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3월 10일: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은행 파산
3월 10일 금요일 아침, SVB는 인출 요청에 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 금융감독청(DFPI)은 즉시 SVB를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관리인으로 지정했습니다. 영업 개시 2시간 만의 일이었습니다. 2,090억 달러 자산 규모의 SVB 파산은 2008년 워싱턴뮤추얼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은행 파산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붕괴 속도였습니다. 문제가 표면화된 지 48시간 만에 은행이 사라진 것입니다.
SVB에는 3,700억 달러의 예금이 있었지만, FDIC 보험은 계좌당 25만 달러까지만 보장했습니다. 문제는 SVB 예금자의 94%가 25만 달러를 초과하는 무보험 예금이었다는 점입니다. 수천 개의 스타트업이 급여와 운영비를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실리콘밸리는 공황 상태였습니다. 주말 내내 스타트업 CEO들과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은 정부에 긴급 개입을 요청하는 로비를 펼쳤습니다.
시그니처은행의 연쇄 파산
SVB 파산 이틀 후인 3월 12일 일요일, 뉴욕의 시그니처은행도 문을 닫았습니다. 자산 규모 1,100억 달러로 미국 29위 은행이었던 시그니처는 암호화폐 기업들의 주 거래 은행이었습니다. SVB 파산 소식에 예금자들이 패닉에 빠져 시그니처에서도 대규모 인출이 발생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100억 달러 이상이 빠져나갔고, 뉴욕 금융감독청은 은행을 폐쇄했습니다.
이틀 만에 두 개의 대형 은행이 연쇄 파산하자 금융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습니다. 다른 지역 은행들의 주가도 폭락했습니다. 퍼스트리퍼블릭, 웨스턴얼라이언스, PacWest 같은 은행들도 예금 이탈을 겪었습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처럼 전염이 확산될 조짐이 보였습니다. 재무부, 연준, FDIC는 주말 내내 긴급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시스템적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정부의 전격적 개입
3월 12일 일요일 저녁, 재무부와 연준, FDIC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모든 예금자,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자까지 전액 보호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사실상 정부가 두 은행을 구제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연준은 은행기한자금프로그램(BTFP)을 신설해 다른 은행들이 국채를 담보로 액면가 100%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평가손실 때문에 자산을 헐값에 팔지 않아도 되게 한 것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월요일 아침 국민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예금은 안전하다. 미국 은행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동시에 "주주와 경영진은 손실을 감수할 것"이라며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정부의 전격적 개입으로 뱅크런은 진정되었습니다. 월요일 미국 은행들의 예금 이탈은 크게 줄었고, 주가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위기는 일단 봉합되었습니다.
SVB 사태의 교훈
SVB 파산은 여러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첫째, 급격한 금리 변동은 은행의 자산-부채 만기 불일치 리스크를 극대화합니다. SVB는 단기 예금으로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고전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둘째, 집중 위험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SVB는 테크 스타트업이라는 한 섹터에만 의존했고, 벤처 투자가 급감하자 동반 몰락했습니다. 셋째, 디지털 시대의 뱅크런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릅니다.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뱅킹은 48시간 만에 은행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넷째, 중소형 은행들은 대형 은행만큼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았고, 이것이 리스크 관리 소홀로 이어졌습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자산 500억 달러 미만 은행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고, SVB는 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다섯째, 정부의 구제가 불가피하더라도 도덕적 해이 문제는 남습니다. SVB 경영진은 파산 직전까지 보너스를 받았고, 주주들은 손실을 입었지만 채권자들은 보호받았습니다. 이는 향후 유사한 위험 추구 행동을 장려할 수 있습니다. SVB 사태는 금리 정상화 과정에서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경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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